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

Rookwood Cemetery,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을 걷다

시드니 서쪽에 있는 Rookwood Cemetery, 정확히는 리드컴이라는 도시, 시드니에서 한인들이 제일 많이 산다는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으로 공동묘지를 천천히 걸어 보자는 생각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막상 이곳을 걸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묘지와는 조금 달랐다.

아름답고 평화로우면서도, 일상생활과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동묘지를 가만히 걷다 보니 문득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룩우드 묘지는 남반구에서 가장 큰 다문화 공동묘지이자 빅토리아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간직한 세계 최대 규모의 현존 운영 묘지라고 한다. 1867년부터 이어져 온 이곳에는 시드니의 오랜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아주 오래된 묘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돌에는 이제는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사람들의 이름과 생애가 새겨져 있다.

어떤 묘비는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어떤 묘비는 작고 소박하다. 잡초와 나무 사이에 오래된 묘비가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의 인생도 결국 시간 앞에서는 모두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묘

Rookwood에는 호주의 전쟁 역사와 관련된 묘역도 있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과 희생자들의 묘를 바라보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평화로운 거리를 걷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과거 누군가가 감당했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고개가 숙여진다.

작은 묘비 하나에 이름과 날짜가 새겨져 있을 뿐이지만, 그 뒤에는 한 사람의 삶과 가족, 그리고 당시의 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다양한 나라와 문화가 함께 잠든 곳

Rookwood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의 사람들이 이곳에 함께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묘역을 걷다 보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묘를 만나게 된다.

각자의 종교와 문화에 따라 묘비의 모습과 장식도 다르고, 추모하는 방식도 다르다.

하지만 결국 그곳에서 만나는 것은 하나의 공통된 모습이다.

살아 있을 때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모두 같은 공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지금의 시드니가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오래된 Chapel과 화장장

걷는 동안 오래된 Chapel과 화장장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식이 이루어졌고, 수많은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을 것이다.

특히 화장장을 바라보면서 죽음이라는 것이 특별한 어느 한순간의 사건이라기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삶의 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머무는 자리는 크지 않다

묘지의 겉모습은 때로 크고 화려하다.

커다란 묘비와 웅장한 기념물, 잘 꾸며진 묘역을 보면 그 크기만큼 한 사람의 존재도 크게 남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사람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자리는 그리 크지 않다.

아무리 묘지의 겉을 크게 만들어 놓아도 몸이 묻히는 자리는 2평도 되지 않는다.

결국 화려한 것은 외관일 뿐이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고, 더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작은 한 자리로 돌아간다.

오늘 Rookwood를 걸으며 그 사실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삶과 죽음은 멀리 있지 않다

Rookwood Cemetery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죽음만 있는 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가족을 추모하고,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매일 이곳에서 일을 하고, 새와 나무와 바람은 평소처럼 자신의 시간을 이어간다.

삶과 죽음이 한 공간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걷다 보니 죽음에 대한 생각보다 오히려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우리는 언젠가 내가 있던 어느 작은 묘소에 이름을 남기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큰 묘비를 남기느냐가 아니라,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가 아닐까?

오늘 Rookwood의 오래된 묘비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생각했다.

삶과 죽음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길 위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죽음을 생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 있는 삶을 조금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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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한글버전 보기(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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